허리는 멀쩡한데 다리만 저리다고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종아리가 남의 살 같다거나, 발바닥이 찌릿하다거나, 앉아 있으면 엉덩이부터 다리까지 뻐근하다고 하시죠.
그런데 허리가 안 아프니까 허리 문제라고는 생각을 안 하십니다. 혈액순환이 안 되나, 다리에 문제가 있나 하시다가 몇 달을 보내고 오시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먼저 결론부터
허리가 아프지 않아도 허리디스크일 수 있습니다.
디스크가 신경을 누를 때, 눌린 자리가 아픈 게 아니라 그 신경이 지나가는 길이 아픕니다. 허리에서 나온 신경은 엉덩이와 다리로 내려가기 때문에, 눌린 곳은 허리인데 증상은 다리에서 나타납니다.
전깃줄이 문 틈에 끼면 전구가 깜빡이는 것과 비슷합니다. 문제는 문 틈에 있지만, 눈에 보이는 이상은 전구에서 생기죠.
다만 다리 저림의 원인이 디스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디스크가 아닌 경우가 꽤 많고, 이 둘을 가려내는 것이 치료의 출발점입니다.
어디가 저린지가 첫 번째 단서입니다
저린 부위가 무릎 아래까지 내려가는지를 먼저 보십시오.
엉덩이나 허벅지에서 멈춘다면 근육이나 관절 문제일 가능성이 함께 있습니다. 반면 종아리, 발등, 발바닥, 발가락까지 내려간다면 신경뿌리가 눌렸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한쪽인지 양쪽인지도 중요합니다. 한쪽만 저리다면 어딘가 한 곳이 눌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양쪽이 발끝부터 대칭으로 저리다면 척추 문제보다는 전신적인 원인, 예를 들어 혈당 관련 신경 문제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언제 심해지는지가 더 큰 단서입니다
같은 다리 저림이라도 어떤 자세에서 심해지는지에 따라 원인이 갈립니다. 이 부분이 실제 진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정보입니다.
| 언제 심해지나요 | 함께 살펴볼 원인 |
|---|---|
| 앉아 있을 때, 기침·재채기할 때 찌릿 | 요추 추간판탈출증 |
| 걸으면 저리고 앉으면 풀림, 허리를 굽히면 편함 | 척추관협착증 |
| 오래 앉아 있을 때 엉덩이 깊은 곳부터 | 이상근·심부둔근 증후군 |
| 허리띠 닿는 부위, 엉덩이 위쪽에서 시작 | 상둔피신경 포착 |
| 서 있거나 걸을 때 허벅지 바깥쪽만 | 대퇴외측피신경 포착 |
| 양쪽 발끝부터 대칭으로, 밤에 더 | 말초신경 문제 (대사성 원인 포함) |
특히 걸으면 저리고 앉으면 풀리는 패턴은 협착증에서 흔합니다.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자전거보다 걷기가 힘들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반대로 앉아 있을 때 심해지고 서면 나아지는 패턴은 추간판 쪽을 먼저 생각합니다. 앉은 자세에서 디스크에 걸리는 압력이 가장 커지기 때문입니다.
디스크가 아닌데 디스크로 오해받는 경우
진료실에서 자주 마주치는 상황입니다.
이상근증후군 — 엉덩이 깊은 곳의 근육이 좌골신경을 누릅니다. 오래 앉아 있거나 지갑을 뒷주머니에 넣고 운전할 때 심해집니다. 증상만 보면 디스크와 거의 같아서, 영상만으로는 구분이 어렵습니다.
상둔피신경 포착 — 허리띠가 닿는 높이에서 얇은 피부신경이 근막에 끼입니다. 요통과 다리 저림이 함께 나타나 디스크로 오인되기 쉽습니다. (이 신경의 해부와 치료 접근은 수압박리술을 다룬 글에서 자세히 정리했습니다.)
대퇴외측피신경 포착 — 허벅지 바깥쪽만 저리고 감각이 둔해집니다. 꽉 끼는 바지나 벨트, 체중 변화가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힘이 빠지는 증상은 없습니다.
천장관절 문제 — 엉덩이와 허벅지 뒤쪽까지 통증이 퍼지지만 무릎 아래로는 잘 내려가지 않습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원인이 다르면 치료해야 할 자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상근에서 눌린 신경을 허리만 치료하면 좋아지기 어렵습니다.
이런 신호가 있다면 미루지 마십시오
아래 증상은 지체 없이 진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 양쪽 다리가 함께 저리면서 대소변 조절이 평소와 다를 때
- 사타구니와 항문 주변 감각이 둔해질 때
- 발목이나 발가락에 힘이 빠져 발이 끌릴 때
- 발열이나 원인 모를 체중 감소가 함께 있을 때
- 가만히 누워 있을 때, 특히 밤에 통증이 더 심해질 때
앞의 세 가지가 함께 나타나면 응급 상황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시간이 회복 정도를 좌우하므로 즉시 진료받으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어떻게 확인하나요
증상을 듣고, 신경학적 검사로 어느 신경이 관여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감각·근력·반사를 살펴 문제가 생긴 높이를 좁혀갑니다.
여기서 한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상근증후군이나 피부신경 포착은 MRI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근육과 신경 사이의 문제라 구조가 아니라 상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MRI에서 디스크가 조금 보이면 그것이 원인으로 지목되기 쉽고, 실제 원인은 다른 곳에 남아 있기도 합니다.
저희가 초음파를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초음파는 움직이면서 볼 수 있습니다. 다리를 특정 방향으로 움직였을 때 신경 주변이 어떻게 변하는지, 눌러서 증상이 재현되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화면을 보며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픈 자리를 짚어가며 원인을 좁히는 과정입니다.
물론 초음파로 모든 것을 볼 수는 없습니다. 척추 안쪽 깊은 구조는 MRI가 정확합니다. 둘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검사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다리가 저린데 허리는 전혀 안 아픕니다. 그래도 허리 검사를 받아야 하나요?
네, 확인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신경뿌리가 눌린 경우 허리 통증 없이 다리 증상만 나타나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다만 허리가 원인이 아닌 경우도 많으므로, 허리 검사만으로 끝내지 말고 엉덩이와 다리 쪽 신경 경로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Q. 저린 게 심하지 않으면 그냥 두어도 되나요?
강도보다 변화의 방향을 보십시오. 저린 범위가 넓어지거나, 아래로 내려가거나, 힘 빠지는 느낌이 생긴다면 강도가 약하더라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범위가 줄어들고 있다면 회복 중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Q. 스트레칭을 하면 좋아지던데 계속해도 되나요?
원인에 따라 다릅니다. 이상근 문제라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신경뿌리가 눌린 상태에서 신경을 당기는 방향의 스트레칭은 오히려 증상을 키울 수 있습니다. 스트레칭 후 다리 저림이 더 멀리 내려간다면 중단하고 확인을 받으시는 편이 좋습니다.
다리 저림은 원인이 여럿이고, 그중 어느 것인지에 따라 치료 방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몇 달을 혈액순환 문제로 알고 지내다 오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처음에 한 번 제대로 가려냈다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증상이 2주 이상 이어지거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면, 원인부터 확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의학 정보이며 개별 진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정확한 판단은 진료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